아무르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노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나는 로맨스 하면 주로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풋풋한 간질간질거리는 시절을 지나 정열적인 사랑을 하고, 결말에 결혼까지 이어지는 그런 사랑에 물들어있었다. 인생의 마지막을 같이 거닐고 있는 노부부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노부부는 평범하게 식사를 한다. 맛있게 먹던중 할머니가 꼭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멍 때리게 된다. 이것이 시초였다. 정동맥이 막힌 수술이었다. 의사는 거의 성공하는 수술이라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수술은 실패했다. 할머니는 신체의 오른쪽 부분이 마비가 왔다.
'우리끼리도 괜찮을거야' ' 나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 '우리 잘 살아왔잖아. ' '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대화 속에서 난 부부의 자식 간의 사랑과 자신들 간의 믿음을 확인하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결국 할머니를 업고 앉히는 것까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은 ' 당신이 집에 와서 좋아' '나도'
하지만 할머니 안느는 상황이 더 안좋아진다. 몸이 이렇게 되자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난 안 힘들어.' 난 이렇게 말하는 안느와 할아버지 다 이해가 갔다. 할머니를 병간호할 때 똑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할머니, 왜 그런 말을 하냐고 가족들이 슬퍼할 걸 모르냐고 묻던 나는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의 마음을 깨달았다.
점점 말도 못하게 되고 기저귀를 차고 간호하는 간호사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고용한 간호사 중 한 명이 안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해고한다. 자식들이 찾아와도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걱정할까 봐 안느를 보여주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할아버지는 끝까지 안느를 보살피다가 결국 안느를 질식사를 시키는 선택을 한다. 할아버지의 선택에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마음을 이해못하진 않았다. 나 또한 할머니가 생명유지장치로만 숨만 쉬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2년간 간호할 때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고, 하지만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또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결국 나 또한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보냈을때 죄책감과 난 정말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 같았다.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면 모르겠다. 끝까지 할머니를 간호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지속된 열정 또한 사랑이고, 할머니를 편히 보내주는 것 또한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끝에서는 더이상의 힘듬과 고통, 힘듦을 벗어나고, 사랑했던 딱 그 부분만 남겨놓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희망이 아녔을까.
마지막 부분에서는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와 같이 떠난 것처럼 나가는 부분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끝까지 할머니를 사랑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아팠으면 같은 선택을 했었을 것이다. 그 부부는 인생의 종착지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노력하는 그 행동 자체가 하나의 사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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