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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알까기

41. 씻는다는 것.

by O_pal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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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게으름은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라고 말하고 싶지만, 천성인 것 같다. 좀 사람이 느리다. 걸음걸이도 느려서 키가 나보다 조금 작으신 엄마가 빨리 걸어가면 따라가는 게 힘들다. 나는 팔짱 끼는 것을 좋아하지만 엄마의 걸음 속도를 줄이기 위해 나의 손을 엄마의 손목에 건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한다. 계단 오르는 건 나에게는 밖을 나가기 싫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왜 계단만 오르면 숨이 그렇게 찰까? 중간에 멈춰서 잠깐 숨을 고르고, 나에게는 끝없이 보이는 90도 각도의 길을 올라가 본다. 엄마는 쉬면 더 힘들다고, 멈추지 않고 내 손을 잡아 끄지만 난 잠깐의 쉼이 계단 오르는데도 필요하다.

 

운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체력이 안좋은 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50미터 달리기였나, 7초 때가 나와서 체육선생님한테 체대 입시를 권유받은 적도 있다. 계주선수는 초등학교1학년과 고등학교 3년 빼고는 매번 선수로 발탁됐다. 피구도 거의 끝까지 살아남았던 것 같다. 잡지는 못하고, 요리조리 사람들 열받게 피해 다녔다. 뭐랄까, 속은 잘 개조되어 있는데, 움직이지 않아서 겉에 녹이 많이 슬어있는 내 몸이다. 기름칠을 열심히 해주면 건강한 몸이었을 것 같은데 녹이 안 낀 곳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기름칠을 해줘야 할지, 양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이 안된다. 

 

성격이 몸을 망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동안 나의 하루 일과는 방에서 침대와 책상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것. 우연히 건강앱에 들어갔다가 걸음수가 126걸음이었던 것보고, 정말 화장실만 왔다 갔다 했구나. 어떻게 보면 의자에 엉덩이 붙어있는 공부에 체질화되어 있는 자세인데? 하면서 공부는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그래도 매일 씻는 나였는데, 잘 안 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 씻으니까 찝찝했다. 그렇지만 나의 게으름과 피곤함에 패배하면서 불편한 마음은 눌러졌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일주일도 안 씻어봤다. 더러운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것 같은데, 우울증에 패배했을 때는 손가락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누가 내 몸에 걸쳐있어서 손이 이렇게 무거웠나? 하면서 손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누가 씻으면 더러운 것이 씻겨내려가듯이, 우울할 때 씻으면 마음속의 응어리들도 씻겨 내려간다고 쓴 글을 봤다. 알지. 그렇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되질 않아. 이런 사람들은 나처럼 안 씻을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면 스스로 씻고 싶은 순간이 올 거다. 가려움을 참을 수가 없거든. 

나의 샤워루틴은 머리를 감고, 얼굴을 닦고, 몸을 씻는다. 엄청 오랜만에 씻었을떄 생각이 난다. 샴푸향이 이렇게 좋은 걸 쓰고 있었나? 머리를 안 감아서 몇 번이고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감아줬다. 머리를 만져주니까 시원했다. 나의 생각의 뭉텅이들을 삽으로 다 퍼내고, 욕실 바닥에 던졌다. 나의 얼굴은 몰골은 처참하지만 아주 기름으로 인해 반짝거렸다. 이건 클렌징 폼으로는 절대 씻을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클렌징 오일을 들고 와 몇 분이고 내 얼굴을 문질렀다. 방에만 있다 보니 대화할 사람도,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얼굴이 굳어있었다. 단지 얼굴을 문지르는데 경락을 받는 것 마냥 아팠다. 바디 워시는 일주일 사이에 새 걸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향이다.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내 더러움과 역겨움 박박 닦아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향기에 심취했다. 올리브영에서 항상 세일하는 제품들만 골라서 구매했다. 왜 향기나는 제품들을 사고 파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올르브영에 들어가면 꼭 테스트 제품으로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힐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자몽향과 오이향을 좋아한다. 상큼하면서 톡 쏘는 자몽향은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오이향은 식물의 세상에서 내가 잠시 와있다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 반오이 파는 이해를 못 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씻는 사람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하루의 퀘스트, 즉 투두리스트에는 샤워하기가 꼭 포함되어있다. 써놔야 하루의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래 이제는 씻어야지 하는 압박감을 주어 내가 씻게 되기 때문이다. 또 씻으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한번 환기되는 느낌을 이제 알기에 막상 씻으면 좋아한다. 그렇게 오늘 밤에도 씻으러 들어간다. 거울을 보고 머리 상태, 얼굴의 뾰루지도 보고, 나온 뱃살도 확인하고, 털도 밀어야겠군 바디체크를 한다. 씻고 나오면 말끔해지고, 얼굴 뾰루지도 없애고 약도 바르고, 바디 워시하면서 지압도 해줘 매일 한층 새로워진 나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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