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사교성이 부족하다. 아니 없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대부분 내 주변의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착한 아이들 뿐이다. 대학교 때는 재수해서 아무래도 나이가 다르다 보니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외향적인 친구가 인사를 먼저 하면서 대답만 하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러다 밥도 먹게 되고, 수업도 같이 다니게 되었다.
특히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특별하다. 우리는 항상 크리스마스 파티한다.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는 서로 있는 지역들이 달라져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단체 카톡으로 안부도 묻고, 어디로 여행을 갈지 세운다. 만나면 고등학교 때 눈보라 속에서도 학원을 걸어갔던 이야기, 저녁을 먹고 야자 시작하기 전에 산책했던 그 포근했던 감정을 회고한다. 그 주변에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서 얼마 없는 용돈을 털어서 빙수를 사 먹으면서 공부했었는데, 이젠 그 카페가 없어져서 추억만 남았다는 말.
야자를 째고, 그렇다고 놀러 간 것도 아닌 각자 집으로 도망간 날. 이때는 정말 어지간히 교실에 남아있길 싫었나 보다. 우리 학교는 철창이 붙어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폐교하기 직전인 학교 같았다. 그런 곳에서 숨이 막히게 공부한다는 건 어찌 보면 열아홉살인 우리에게 각박했다. 앉아있는 의자에서 바로 뒤돌아서면 친구가 있는데 그 유혹을 이겨내면서 공부하기엔 궁둥이가 간질간질했다.
한편엔 보충수업 시간에는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대학교에 가면 친구와 꼭 같이 살자며 한쪽 방에는 만화책방을 만들 거라고. 우리는 만화를 좋아하니까, 꼭 이렇게 하자는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다른 대학교에 갔고, 집값이 폭등해서 같이 살 수가 없다. 그때는 우리가 집을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이십 대 후반이면 돈을 많이 벌 거라는 희망을 가진 어리숙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난 가혹한 짓을 했다. 나의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그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 괴롭고, 내가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다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카톡을 탈퇴했다. 번호도 바꿨다. 그렇게 하기 전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었다. 전화도 자주 안 하던 친구였는데 나에게 전화해서 괜찮아? 만나서 이야기할까? 밥 먹자. 라고 먼저 다가왔던 친구에게 나는 다음에. 지금은 쉬고 싶다고 말하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니 한 친구는 집으로 전화 왔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친구였다. 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생각해보니 엄마들끼리 모임을 잠깐 했었는데 그 번호를 유추해서 전화를 한 거였다.
'설아야 무슨 일 있어?'
' 나 지금 너무 우울해서 그러는데 내가 먼저 연락할 테니까 기다려주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고, 집 전화기를 해제했다. 난 고립을 원했다. 내가 이런 사실을 내 가족을 제외하고는 제발 아무도 모르고 날 잊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먼지처럼 사라져버리길.
다른 친구는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 집에 몇번이나 놀러 온 친구라 가능한 일이었다. 왔으니 돌려보낼 수도 없고, 왜 그러는 말에 나는 눈물밖에 보여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해주기 싫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대신 부탁을 했다. 내가 이런 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나 쪽팔리고, 열등감 때문에 누가 알면 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친구를 보냈다.
힘든 시기라는 것을 친구들이 눈치채고(물론 눈치챌 수밖에 없긴 했다. 카톡을 탈퇴했으니) 나의 문을 두들겼다. 나는 응답을 못 했다. 시간이 지나니 나를 이렇게 포기하지 않아 준 친구들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의 치부들이 약점이 될까 봐 친구들한테도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이해해주고 기다려줬다. 약 3년이란 시간 동안 어떤 친구는 엄마에게도 안부를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면서 나를 기다려줬다.
내가 인간관계를 잘한 것도 아닌데 이런 친구들이 내 옆에 있다니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게 얼마 없는 친구들은 내게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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