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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알까기

53. 용서가 아니야.

by O_pal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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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의 두 달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감정을 차단해 보려고 잠으로 도피하고, 유튜브만 보면서 나의 현실을 외면했다. 며칠이 흘렀을까. 나의 모습은 초췌했다. 아니 정확히는 추했다. 나가지도 않고 박혀만 있던 나는 몰골이 엉망진창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퉁퉁 부은 눈. 눈은 내가 나를 보는데 초점이 맞질 않았다. 아니 내가 나를 보길 거부한 건가. 이대로 있으면 그 아이가 기뻐할 것 같았다. 알고리즘이 나의 상태를 알았는지 강연을 추천해 줬다. 내가 행복해야지 그 아이는 불안할 거라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차근차근 힘들지만 마주 봤다. 그 애와 나눈 대화들. 14년 전의 상처들.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혹여나 내가 놓친 상처가 있을까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 아이한테 화났던 총 3가지가 나왔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 나한테 해야 할 사과를 왜 신에게 하고 있는가? 또 여기서 하고 있다는 말로 교회를 떠나지 못하겠다는 그 애의 말.

 

한 달이 흘렀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장을 했다. 그 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만났으면 좋겠다고 먼저 말하던 그 아이 말대로 만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족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예전의 어린아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고만 있지 않기 위해 카톡에 내가 몇 번이나 퇴고한 글을 담고 갔다. 점점 그 아이를 만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초해졌다. 침이 마르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온 주위에 퍼져 나가는 듯했다. 결국 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말을 안 했는데 오빠 나 개를 만나러 왔어. 오빠는 처음에 당황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더 이상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이겨내보고 싶었어. 오빠는 우선 감정조절에 실패해서 내가 격해질 때마다 소리 지를 는 것, 그리고 욕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알겠다고 하고,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할 테니까 나중에 전화하면 꼭 받아달라는 말과 함께 끊었다. 

 

내가 준비하느라 너무 일찍 도착했던 걸까? 음료를 다 마셔버렸다. 그 아이가 오고 음료를 시키고 어색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막상 그 아이가 오니 담담했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내가 먼저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그 아이는 사실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대답에 나는 내가 화났던 세 가지 이유를 차분히 말했다. 그 입에서 나온 말 '미안해' 14년 만에 직접 마주 보고 들은, 아니 그렇게 받고 싶은 사과는 기분이 묘하다. 사실 사과를 안 하기도 기대했다. 내가 마음껏 화내하고, 복수할 수 있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인생은 사이다가 될 수 없었다.

 

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를 부러워했나 보다. 놀리고, 뒷담 화하고. 자신도 그때의 자신을 보면 반성한다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에 사과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거기다 대고 더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지금 이런 상태인 거 아셔? 엄마만 알고 있어. 난 여기서 그 아이에게 줄 마지막 기회를 건넸다. 지금 내가 교회를 떠나라고 하면 떠날 수 있어? 여기서 대답이 아니, 라면 이미 저런 사과가 나와도 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같이 망가지는 것. 하지만 예상외의 답이 나왔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나는 바로 말했다.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그렇게 말을 해? 이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였다. 내가 자살이라도 시키면 무슨 결정을 하려고 저런 막무가내인 말을 하는 건지. 한번 더 대답하라고 했다. 네가 정확히 말해줘. 떠날게. 난 그 대답이 나오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는 나의 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대로 나쁜 애인 채로 멈춰져 있길 바랐다. 그래서 꼭 내가 당해본 아픔을 똑같이 당해보고 고통스로워하길 바랐다. 이건 10년이 넘은 생각이 도를 넘어 그 애보다 악해져 있을지도 모른 나는 이런 결과를 원치 않았다.

 

그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내가 연습한 대사는 '못 떠나'라고 말했을 때의 대사들. 몇 번이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최대한 상처를 받고, 수치심을 받을 수 있게 몇 번이고 대사를 외우고, 말을 하다가 울고, 표정도 연습했던 시간은 다 무의미해졌다. 나도 아무 말이나 뱉어야 할 상황이 왔다. '다녀. 나에게는 아직 넌 14년 전 그 아이와 같아. 네가 달라졌다는 것을 여기서 내가 보는 앞에서 증명해.'라고 말했다. 난 항상 이렇다. 온갖 모진 말을 쏟아내고 싶지만 꼭 한번 다 삼킨다. 그리고 최대한 정제된 말로 그 아이에게 전한다. 그 애는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그때는 2022년 12월. 나는 그 애한테 물었다. 내년 계획이 어떻게 돼? 준비하는 게 있어서 그 공부를 할 거라는 그 애말. 나한테도 물어봤다. 나는 널 용서하는 게 올해 목표야. 우리는 대화를 잘 마치고 각자 집으로 갔다.

 

뭐랄까 공허한데 후련했다. 옥죄던 게 좀 풀어진 느낌? 그 애의 말이 기억난다. 지금 이렇게 사과를 받아줬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화가 나고 그럴지 모른다고. 맞는 말이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걸 그 아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시간에게 맡겨보는 수밖에. 마음 근육을 키우는 수밖에. 

 

가족들은 내가 그 아이를 만나고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울지 않았냐. 감정 컨트롤을 잘 되었냐. 왜 말도 없이 간 거냐. 나를 다그쳤지만 후련해진 표정에 부모님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수고했다. 한 산을 넘었다고 다독다독해 주셨다. 드디어 긴장이 풀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아까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이제 14년 속에서 벗어 나오자는 말. 나는 이제 한발 나온 거다. 아직도 그 애를 보면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분노했다가도, 아니지 기분 나빠하지 말자. 하지만 나를 위해서 저 아이를 놓아줘야지. 항상 반복한다. 

 

난 아직도 용서한 게 아니다. 용서는 아마 평생 못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모든 삶과 성격을 바꿔놓은 존재이기에. 이제 나의 모든 힘듦과 고민들은 그 애한테 넘겼다. 증명하르는 것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용서를 해야만 내가 후련해지고 그러는 게 아니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 내가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온전한 내 세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나의 어린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지금까지 너를 방치시키고, 외면하고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는 말. 왜 그때의 너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냐고 죄책감만 주었던 내가 나의 내면아이를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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