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연관이 된 지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지옥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그 얼굴이 떠오르고, 분노와 화가 치밀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목도 나가고, 정신도 나가고, 나도 이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진지하게 입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나를 규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 전조현상이 몰려오고 있었다.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고, 차를 보면 그냥 도로 한복판에 뛰어들고 싶고, 높은 빌딩을 보면 몇 층인지 계산해서 저 정도면 깔끔히 내 몸이 부셔질 수 있겠다며 무엇을 보던지 나의 목적은 세상에서 사라짐 뿐이었다. 차라리 병동에 있으면서 나를 묶어놓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해야겠다는 결론이 내렸다. 그렇게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난 몸이 점점 안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임파선염이 다시 온 걸까. 상태를 지속적으로 봐온 친구가 피검사를 해보라는 말에 미루고 미루다 한 피검사는 갑상선 저하증이었다. 하, 또 먹을 약이 늘었다. 선생님은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평생 먹어야 하지만 부작용도 없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새로 생긴 하나의 병은 내 이성을 끊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모든 게 그 아이의 탓같았다. 미칠듯한 스트레스와 눈을 감아도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때문에 내 24시간은 화로 가득 채워졌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당연한 결과지만 이렇게 안 좋아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감정들이 잊히게 하루종일 수면제만 먹여서 날 좀 잠잠하게 만들고 싶었다. 입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많은 병원들을 대조하던 중 나는 갑작스런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가 내가 아는 지인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 이 감정을 무슨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다. 분노를 넘어선 화가 몰려들어왔다. 화가 너무 올라와서 드라마에서 뒷목 잡고 쓰러지는 게 설정인 줄 알았는데 밖에 있던 친구에게 그 사실이 맞냐고 확인한 뒤 맞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대로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났던 건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인들은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말을 안 했다는 그 말들. 하긴 이렇게 들켜서 몰래 알던가, 아님 누가 말해줘서 알게 되는 난 충격을 먹었을 거다. 그럼에도 허탈했다. 배신감도 들었다. 배려가 배려가 아니었다. 바쁜 퇴근시간 속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불행해 보였다. 버스를 타려던 나는 발길을 돌렸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피해서 걸었다. 이해를 아무리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랑 이런 상황이고, 본인은 죄책감에 미안하고 그런다는 사람이 대놓고 연애를 하다니? 그것도 아는 지인이랑.
그때의 나는 아, 이 아이는 내가 죽어야 죄책감이라는 것을 느끼겠구나. 내가 죽어서 장례식이 열려서 내가 죽은 것이 알려지면 그때 개는 깨닫는게 있겠구나. 본인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진 것을 깨닫겠구나. 난 그때 무작정 근처의 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2시간이 넘게 걸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상담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결론은 오히려 나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말 실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몸이 아픈 것도, 우울증도 다 네가 선택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더 이상 대화를 못하겠어요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위에 둘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인가? 아니, 무엇보다 누가 이것을 선택을 하겠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말하신 의도를 이해했지만 그 당시엔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내 마지막 희망끈이었던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이 그 때이구나, 난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면서 천에 다다랐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다시피 실패했다. 그 주는 나중에 와서 꺠달았는데 수능 주간이었다. 즉, 이 천에 있으면 원래도 수상하지만 딱 봐도 상황이 오해하기 좋을 상황이었다. 내가 다리 위에 가만히 서서 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차들이 서행하고, 어떤 차는 멈춰서 가만히 보기도 했다.
문제는 차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또 다른 우울증이 걸린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친구의 친구는 여기서 자살했다. 하필 내가 온 곳이 그 친구의 장소였다.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이 나면서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마음에 주저함이 생겼다. 왜 하필 이 장소로 왔을까. 왜 무작정 걸어온 곳이 여기일까. 난 결국 발을 내렸다.
실패하니 공허했다. 핸드폰을 켜보니 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다 나를 찾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가족 생각을 전혀 못했다. 이미 오빠는 아까 연락 왔던 친구에게 대충 상황을 들은 상태였고, 지인들에게 혹시 다른 연락이 없었는지 다 전화를 돌린 상황이었다. 지금 어디냐는 엄마의 말. 끊자마자 엄마는 오빠와 얼마 안 되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엄마는 우는 날 안아주셨다. 그리고 다가온 오빠의 말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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