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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오늘의 기분은

5. 나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야

by O_pal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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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문과예요? 이과예요? 딱 묻는다. 아니 우리 세대까지 만인가? 문과면 역시 감성적이네요. 와 글 쓰는 것봐. 이과면 진짜 너무 직설적이다, 감정이 없는 수준 아닌가요?라는 고정관념이 아직 많이 묻어 있다. 인터넷의 문이과 영상 댓글만 봐도 딱 구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과인 나는 이것저것에 영감을 많이 받는다.(아니 사실 문과에 가고 싶기도 했다) 특히 노래와 들었던 상황이 기억나서 뭉클해지는 경우가 많다. 에이핑크 미스터 츄를 들으면서 부모님과 뜨거운 여름에 고속도로 길을 달리지만 차 안은 시원해서 에이핑크의 통통 튀는 노래와 잘 어울렸다. 여행 가는 그 순간의 감정, 부모님과 함께 간다는 즐거움, 여기저기 펼쳐진 녹색 나무들. 무언가 내 마음을 좋게 울렁거렸다.

 

사실 이런 나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나는 이성적이고, 이런 것에 크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겼다. 감정 소모를 하면 생활하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최소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관심 없는 선에서만 그랬다. 바이올렛 애버가든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고, 스포일지 모르지만 10화에서 병에 걸릴 어머니가 남겨질 딸을 위해 생일날 매년 보낼 편지들을 쓰고, 그것을 받은 아이의 과정을 보는데 안 울려고 그렁그렁 눈에 매단 채로 있다가 결국 펑펑 울었다. 나 이런 거 보고 우는 사람이었구나.

 

하이큐라는 배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관심에도 없던 배구 규칙도 알게 되고, 무엇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와 스파이크를 치는 파워풀한 타격감. 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들은 그 사이에 계획과 눈부신 팀워크를 보여준다. 공을 끝까지 바닥에 놓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자기 몸을 불살라 공을 위로 띄운다. 나는 스포츠가 이렇게 내 마음을 불타게 만드는 경험을 처음 했다. 뜨겁고, 선수들의 의지에 나도 동조해서 배구는 아니지만 끝까지 하나 뭘 하면 물고 늘어지자라는 하나의 인생 문장을 내 마음에 새겼다.

 

또 몇 년 동안 심적으로 문제가 있어 친구들의 연락을 잠시 끊었었다. 다시 불안에 떨면서 전화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힘들었겠다. 수고 많았어라고 말해주는데 나는 속에서 뭐가 욱하면서 해소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아픔을 보이면 약점이 될까 봐, 오히려 말하지도 않고, 잠수 타버린 친구에게 선뜻 말해주는 친구들은 내 굳은 감수성을 깨뜨렸다. 내가 못해준 만큼, 날 보듬어 준만큼 앞으로 더 잘해줘야지

 

나는 감정의 미동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게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감정의 점수가 -와 0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점수가 20점으로 50점으로 상승했다. 탁 트인 도시를 밤에 그저 벤치에 앉아서 한 없이 바라보기, 입맛에 맞지 않아도 앉아서 사람들이 먹는 것을 구경하기, 친구와 함께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서 달라진 하루 일상을 즐기는 것. 에펠탑에서 내려와 우박을 맞아도 원래라면 화를 냈겠지만 옷이 다 젖어도 함박웃음이 나오는 순간들. 

 

특히 내 눈에 담지 못하는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압도되는 느낌? 섬세하면서 사람같이 구현된 조각상들을 보면서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왜 조각을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아프로디테 여신한테 빌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름답고, 매료되면서 내가 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은 색깔이 있어서 한 없이 바라만 보게 된다. 나는 벅차오른다. 왜일까? 이 시대의 사람을 볼 수 있어서? 눈부신 색감과 미학적인 그림에 놀라서? 모든 게 종합적이다

 

나는 왜 감정의 차이가 생길까를 꽤 고민했다. 이유를 찾았다. 현생의 나와 여행할 때의 나는 너무나도 달랐다. 여행 가서는 살아야 하니까 말도 더 걸게 되고, 어쭙잖은 영어 실력으로 길도 묻고, 호텔에 건의도 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웨이터 분들이 입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따봉을 날려주는 나까지. 내향적인 내가 외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지? 생각해 보니까 여기는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본래의 내가 나온다. 넌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그래서 난 언젠가 꼭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음악도 나를 풍부하게 만든다. 특히 밴드 루시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나의 감정을 경쾌하고, 시원하고 뻥 뚫리게 만들어주는 노래가 많다. 히어로라는 노래는 웃기면서도 다들 한 번씩 나는 히어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을 이래도 히어로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소리로 들려준다. 노래만 들으면 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파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감정이 든다. 이때의 감정은 탄산이 가미된 파란색이다. 아니 정확히 하늘색과 하얀색이 마블링된 색으로 하고 싶다.

 

나는 회색과 검정을 왔다 거리던 이 감정이 지금 너무나도 다채롭게 변해서 신기할 정도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것도 나의 벅차올랐던 그때의 색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지금 글 쓰는 나의 감정은 초록색이다.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듯이 나의 글을 여기저기 남겨두고 있다. 미래에 보면 또 어떤 감정으로 보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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