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말이 많다. 사실 친한 사람들 한정이다. 제스처도 많다.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손을 요리조리 고개는 앞 뒤로. 처음에는 내가 이 침묵이라는 적막이 싫어서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계속 나를 관찰한 결과 그냥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말 듣고 남이 웃는 것도 좋고, 나 스스로도 말하면서 빵 터지면서 목을 뒤로 젖히는 게 좋다. 물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경청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입을 닫기도 한다. 아예 그때는 말을 안 하고, 전혀 입을 뻥끗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땐 또 입이 근질거리지도 않는다.
우리 집은 대화가 많다. 내가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가 했더니 팩트로 날려버리는 말투는 아빠를, 그리고 입술이 쪼물거리면서 움직이는 조잘조잘 거리는 대화는 엄마에게서 온 것이다. 아빠는 가만히 듣다가 묵직한 팩트로 날려버린다. 가끔 아빠한테 전화해서
'나 힘들어 죽겠는데도 운동을 갔다 왔어.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운동 너무 하기 싫어.'
'그래도 어떻게 하니? 많이 먹었잖아! 누가 그렇게 많이 먹느라혔냐. 우쨔냐!'
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상처받기보다는 웃겨서 웃음이 빵 터진다. 아빠, 맞는 말인데 그렇게 딸내미에게 폭언을 해야겠어?라고 물으면 아니지. 사실을 말해준 거지? 하면서 장난기 있는 표정을 지으신다.
엄마도 요즘 갱년기가 오셔서 예전과 다르게 뻔뻔해지셨다. 옛날의 엄마와 달라진 지는 오래됐지만 이제는 원더우먼에 나오는 이하늬 배우 성격 같아졌다. 엄마 나 못해먹겠어!라고 하면 그래도 해야지라고 조언하셨는데 이제는 그래 때려치워!라는 말이 나온다. 오히려 이런 말이 나오면 함부로 그만둘 수 없는 양심의 찔림이 더 강해진다. 아니 사실 그걸 노리셨던 걸까?
말을 많이 하고 싶은 날에는 오빠랑 있으면 안 된다. 특히 오빠는 나보다 말이 더 많다. 특히 산뜻한 알코올의 냄새가 풍기면 그때는 슬쩍 피하려다가 잡히면 말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진다. 4살 많은 오라버니의 조언이 마구 쏟아진다. 옛날에는 술 먹으면 바로 침대에서 들어가서 뻗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간이 적응을 했는지 11시에 와서 새벽 3시까지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렇다고 본인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다. 나의 조언이다. 술김에 뱉는 조언들이라 처음에 오빠가 들어오면 나는 월월 이러면서 개소리를 내면서 도망갔는데 나를 위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감정을 술을 빌려서 전하는 것 같다.
요즘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어 집에 오면 정말로 혼자가 되어서 입에 거미줄을 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전화할만한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골고루 전화를 건다. 아침에 엄마가 전화로 나를 깨우는 것으로 하루의 대화가 시작된다. 가끔 늦잠을 자느라 전화를 못 받아서 일어나서 다시 걸면 엄마는 이제까지 잔겨? 하면서 빨리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한다. 비몽사몽으로 대화가 이어나가지 못하고 그만 끊어버린다.
꾸물꾸물 침대에서 기어 나와서 시리얼을 먹는다. 아침에는 밥이 먹으려고 해도 들어가지지 않는다. 다 먹고 설거지를 쌓아두고 공부를 하러 떠난다. 그렇게 어깨가 조금씩 말려가면서 몸이 찌뿌둥해질 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빠의 퇴근길은 이제 나와의 통화가 주된 시간이 되었다. 오늘 뭐 했는지 아빠에게 조잘조잘 보고 한다. 어젯밤에 윗집이 시끄럽게 해서 잠을 못 잤다. 나 오늘 공부가 영 안된다. 오늘 마음이 우울하다. 아빠는 아빠의 조언을 강경하게 말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좋은 음식 섭취 그리고 만보 걷기! 누가 이과 박사님 아니랄까 봐 정석적인 정답을 말씀하신다.
' 아빠 내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몸이 안 되는 것 어찌합니까? '
' 건강하게 낳았는데 몸에 하자가 많다니!'
' 그럼 난 누구 유전자에서 온 거야?
' 돌연변이지 뭐~'
주로 나의 수다는 밤에 이루어진다. 가끔 친구들과 전화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거의 엄마와의 수다다. 오늘 있었던 커다란 사건을 말하고, 엄마는 오늘 뭐 했는지. 기분은 어떤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헬스장을 다니고 있어서 엄마의 첫마디는 헬스장 갔다 왔니?로 시작된다. 요즘 운동을 주말 빼고는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에게 무슨 온동을 배웠는지 말하고, 어제 배운 운동의 여파로 내 상체에는 근육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 가슴 근육 쓸 일도 없는데 어쨌든 가슴 운동도 하고, 푸시업 올라오지도 못하는데 선생님이 내 엉덩이 잡아끌어줘서 올라왔어. 그리고 엄마 등은 동 했는데 처음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에 진짜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어. 온몸이 다 아파. 상체를 했는데 하체도 아픈 것 같아.'
' 엄살 피지 마. 그리고 네가 운동을 엄청나게 안 했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아파도 오늘 또 가. 가서 운동으로 풀고 와. 너네 오빠가 말한 명언 있잖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러니까 아파도 하고 와. '
' 싫어.'
' 너 요즘 말 끝마다 싫다고만 해? 아주 부모님한테 순종할 줄을 몰라.'
' 중학교 때도 안 나던 여드름이 이제 나고 있잖아. 난 이제 사춘기가 시작된 거야.'
' 헐. 이제 사춘기면 도대체 널 언제까지 키워야 하니? '
우리 가족은 사실 더욱 많은 드립이 난무하기 때문에 거의 깔깔 웃으면서 통화를 한다.
오빠는 가끔 전화가 온다. 거의 돈문제로 전화가 절반을 차지하긴 하지만, 요건만 묻고 끝나는 전화에서 늙으니 싸움만 하던 남매에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어제는 11시에 회식을 끝나고 집에 가던 도중에 전화가 왔다.
' 운동 잘하고 있냐?'
' 하고는 있는데 나 진짜 온몸이 아파.'
' 돼지는 그 정도 해야 살 빠져. 더 해야 하는 거 알지? 주말에 집에 오면 pt 잘 배웠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주말에도 오라버니가 운동시켜 줄게.'
' 거절한다.'
그러면서 오빠의 오늘 하루 생활 이야기도 듣는다. 축가를 맡게 되었다고, 이 나이 먹고 축가라니. 하면서 그 와중에 불러보는 이 사람은 상당히 지금 신경 쓰고 있다. 삑사리 나도 책임 안 진다고 이미 다 말을 했다고 한다. 오빠 결혼식에는 내가 불러주겠다고 하니까 결혼식 망치지 말라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우리 가족은 나의 조잘거림을 재밌게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잘 받아준다. 계속 매일 전화를 걸게 되는 이유가 있다니까? 혼자 있으면 쓸쓸하다 아니면 정말 무미건조해서 무슨 감정일지도 모를 때가 많은데 가족들과 전화하면 말이 많아진다. 서로 드립을 날리기도 하고, 거기에 다 반응해서 빵 터지기도 하고. 이런 친구 같은 가족들이라 나는 오늘도 앞으로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이어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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