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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알까기

24. 아직 밖을 나가기엔 너무 어려워요.

by O_pal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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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년은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나가면 모르는 두 눈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가면 내 눈앞도 가려질만한 캡 모자와 이 시국에 나타난 코로나로 싫으면서도 현재는 고마운 마스크까지. 나에게는 철통방어가 필요했다. 이렇게 꽁꽁 싸매고 오면 상담 선생님은 얼굴 좀 보자고 하면서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 지금 전보다 돌아다니는 게 약간 더 편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도 힘들어요.’
‘ 마스크 쓰고 다니니까 안전감이 들것 같은데?’
‘ 네. 그래서 영원히 안 벗었으면 좋겠어요.’

우울에는 산책이 좋다고 말한다. 안다. 하지만 할 힘이 없을 뿐. 그 말을 우리 어머니도 들으셨는지 이때부터 엄마와의 중간중간 산책이 많아졌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날은 4월 우리 집 앞 근처 벚꽃이 만개한 날이었다. 엄마는 꽃이 폈다고 나가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엄마는 억지로 이불을 뺐고, 옷을 갈아입혔다. 어쩔 수 없이 나가지만 제발 엘리베이터에서 아무도 안 마주치길 바랐다. 이때의 얼굴은 누가 봐도 나 죽겠어요라는 얼굴이었으니까.

나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었다. 벚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엄마가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나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핸드폰만 바라봤다. 그러고 다시 걷기 반복. 제발 아는 사람이 안 나타났으면 싶었다. 어디 아파요?라고 묻는 사람에 엄마의 대답을 난 듣고 싶지 않았다. 이때의 난 아직 엄마의 과거의 행동과 현재의 다른 행동 중에서 어떤 선택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난 당연히 엄마가 전자일 거라 생각했다. 엄마한테 걸으면서 물었다.

‘ 엄마 나 쪽팔리지?’
‘ 뭐?’
‘ 내가 지금 이 모양이라 사람들 만나는데 쪽팔리잖아.’
‘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날 무슨 계모로 아니?’

내가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다. 분명히 전자였으면 하긴 엄마를 나를 밖에 데리고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을 것이다. 달라진 엄마의 대답에 정말 엄마는 예전과 180도로 달라졌구나. 안 변한 건 나였구나 싶었다.

이때 엄마는 꽃 옆에 있는 나를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사진첩에 들어가니 나의 모습은 담겨 있었다. 그때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다르다. 나의 표정의 색깔은 시멘트 색이었다. 곧 어디 땅에 묻어질 것 같은 상태. 지금의 표정은 살짝 회색끼가 있는 분홍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은 생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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