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시기와 질투가 많음을 이 종이에 고백한다. 그렇다고 다행히 남을 험담하는 질투는 아니다.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 하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자신을 갉아먹는 질투 유형이다.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마음이 질투가 나서 나 지금 매우 꽁기해졌어라고 말하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구나 하면서 넘어가기 힘드니까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는다. 시간도 없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것들만큼 다 잘하고 싶어서 항상 난 시간이 없다. 내가 애매해지는 이유가 있다.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닌, 그냥 조금 알아요! 의 상태.
나의 질투의 근원은 어디서 왔을까? 왜 남들보다 더 심하게 질투를 느끼고, 그 질투의 결과는 왜 나에게로 향하는가. 우리 집은 평가가 심했다. 아무래도 교육자 집안이다 보니 엄마의 주변 자식들과 비교대상이었다. 누구는 뭘 했더라, 상을 탔더라. 내가 뭘 잘해야만 그런 소리를 듣지 않고 칭찬을 들을 수 있어서 하기 싫어도 해나갔던 것 같다. 이것의 문제는 당연히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뭐든지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
당연히 내가 천재도 아니고, 또 뭐가 하나에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다 잘하려고 하니 그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해? 이러고 잘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서 또 낙심하고. 도돌이표였다. 이렇게 내가 다 잘해서 얻고 싶은 건 뭐지? 인정이었다. 잘했어 넌 이걸로 충분해. 이것도 정말 대단한 거야.
그렇게 깨달은 순간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인정 욕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판정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면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구나. 부모님에게 못 받은 인정의 결과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은 대놓고 말한다.
엄마, 나 창찬해줘.
그래. 칭찬.
그걸로 불충분해. 더 해줘.
또 하나 바뀐 점은 질투의 대상인 사람을 나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 사람이 상 받았으면 내가 상을 받은 거라고 상상을 했다. 그러니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넬 때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이 나왔다. 웃음도 진심이었다. 네가 나 대신 상을 받았구나.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나 참 대단하군. 내 지인이 받은 거니까 내가 받은 게 맞지. 웃긴 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면서 재미있다. 내가 온 세상의 상과 인정은 다 받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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