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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알까기

46. 광대에서 미소짓는 사람으로

by O_pal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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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였을 때 난 어떻게 웃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나도 해맑고, 꺄르륵 높은음을 내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점점 영혼 없이 웃는 법이 터득이 되었다. 중학생 때도 아이들의 무리에 끼기 위해 별로 관심 없는 연애이야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도 학교가 싫어서 그랬는지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표정으로 있으면 친구들은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라면서 나의 마음을 캐내고 싶어 한다.

 

질문의 답도 없고, 답이 있더라도 사실 너희들 이야기 재미가 없어, 관심 없는데 듣고 있었어 반응이 없었을 뿐.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으니(그랬다가는 난 정말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을 거다) 아니야 잠깐 나도 모르게 멍 때렸어. 그리고 빙긋 웃고 다시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 이런 가짜 웃음을 짓게 된 이유가 우연히 영국에 갔을 때 나를 보는 사람마다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저 사람들 왜 저러는 거지? 나 지금 옷이 이상한가? 고민하다가 결국 옆자리 있는 애한테 물었다. 왜 마주치면 웃는 거야? 그냥 관습 같은 거야! 마주치면 입꼬리를 울리고 눈웃음 짓는 거. 그때 문화가 달라서 내가 다르게 받아들인 거구나. 저 사람들은 자기가 웃어주고 있는데 뭘 쳐다봐라는 눈빛으로 본 내가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그때부터 우연히 눈 마주치면 입고리부터 올라가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눈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무표정에서 바로 미소 짓기. 이런 거 보면 난 확실히 서비스 마음가짐은 잘되어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맞지 않을 뿐.

 

원래도 웃음기가 많이 없는 편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웃음을 만들어내면 광대가 아프다. 내 얼굴 근육이 억지로 당겨져서 눈도 피로하고, 입은 더 이상 올라가지지 않는다. 어색한 웃음 하하하... (나름 노력한 건데 다들 티 나서 이미 알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짓고 있는데 옆에서 즐겁다는 쾌활한 정제되지 않은 웃음소리가 들리면 쳐다보게 된다.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거지? 시끄러워.

 

갑자기 우울증이 확 왔을 때는 무감정 무동요 상태였다. 오히려 깔끔히 비워진 공허의 상태고, 내 몸과 마음을 포기한 상태라 아무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선생님이 개그 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 레전드 편을 보라고 했지만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웃음 참기 챌린지 영상을 봐도 나의 감정은 그들이 움직이는 동작들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던 중 엄마가 산책을 강행했다. 억지로 패딩옷을 껴입혀 끌고 나왔다. 그때는 약 오후 1시였다. 겨울방학 시즌이었고, 아이가 많았다. 걷다가 놀이터에서 쉬고 있는데 아이들의 하이톤의 웃음소리, 장난치면서 웃는 소리, 엄마라고 외치며 웃는 소리가 넘쳐났다. 난 엄마한테 그때 한 질문이 떠올랐다. 재들은 뭐가 저렇게 행복할까? 엄마랑 나 둘 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그 아이들만 바라보다가 산책이 끝났다.

 

상담 선생님은 이런 나를 보고 극약처방을 내리셨다. 스마일 스티커를 집안 곳곳에 붙이고 스티커가 보일 때마다 억지로라도 웃으라 했다. 그리고 웃는 사진을 매일 한 장 한장 찍으라고 했다. 나랑 엄마랑 내가 움직이는 곳곳에 부쳤던 기억이 난다. 난 주로 내 방을 붙였고, 엄마는 그 밖의 장소에 붙였다. 사실 내방에서는 몇 번 시도하다가 스마일스티커를 벽지라 생각하게 되어 나중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 화장실을 갔는데 큰 걸 시도하고 있던 중 내 바로 앞에 주황색 스마일 스티커가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여기에 붙여놓을 생각을 어떻게 한 거지?라는 생각이 웃겼다. 자꾸 눈을 안 마주치고 싶은데 스마일 스티커는 검은 눈의 광인이었다. 나를 끝까지 쳐다보는 존재였다. 항상 장트러블이 있는 나인데 그 순간은 재빠르게 처리를 하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스티커를 떼려고 했지만 때는데 그 하얗게 뜯어지길래 다시 붙여놓았다.

 

테이블 옆쪽이 내 자리라 거기서 밥을 먹고 있는데 파란색이 보여서 쳐다봤더니 파란색 스마일 스티커가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네가 왜 또 여기에 있어? 밥 먹다가 당황해서 뱉었다. 이번 스마일 스티커는 한쪽 눈을 윙크하고 있었다. 뭔가 체할 것 같아서 얼른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짓 거리까지 해야 하나, 이게 도움은 되긴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하루를 보냈다.

 

내가 진짜 미소를 짓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되고 나서 제대로 웃은 건 약 6개월 만이었다.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에게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또 내가 진짜 웃지 못했던 이유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나서다.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공감하지 않고, 나의 문제에만 집중하거나 좋게 말해 항상 시니컬한 태도였다.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상상하는 것부터, 아예 친구와 공감될 만한 재미있는 소재를 꺼낸다는지, 남의 말을 흘려듣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말을 놓쳤다 싶으면 다른 사람이 반응하는 걸로 복기하고 공감능력을 늘리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니컬한 말투나 생각이 튀어나오기 전에 한번 누르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티커를 붙인 지 3년이 넘어 4년 차가 되었다. 이제 화장실에 있는 주황색 스티커는 웃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형태만 남았다. 윙크하고 있던 파란색 스티커는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내가 웃게 되어서 이제 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졌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첫 시발점이 되어준 스티커요법은 나에게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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