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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알까기

35. 이별의 흔적들

by O_pal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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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과의 관계는 꼭 내가 처음 사귀는 느낌을 들게 해 줬다. 왜일까? 생각을 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내가 더 좋아한 적이 처음이라는 것. 지인들도 다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내 눈에 그 사람이 참 많이 담겼나 보다. 좋아하고 마음을 퍼주는 건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사람을 신뢰하고, 신경 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가 쓰인다. 그 감정을 넘어서 친구나 연인에게는 더 많은 나를 쏟아붓는다. 나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을 나는 제대로 해본적이 처음이라 그 사람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보고 티가 안 난다고도 말을 했었던 그 사람이라 난 더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연습도 해보고, 나의 어색한 감정표현을 그 사람은 좋아했다. 그렇게 좋으면서도 힘든 나의 감정의 드러냄은 하루 에너지를 다 쓰게 만들어 데이트를 갔다 오면 나는 거의 침대에 뻗어있었다. 뻗은 와중에 내가 혹시 한 말이 괜찮았나? 회고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이제 스스럼 없이 감정 표현을 한다. 친구한테도 너랑 있어서 즐겁다.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친구들의 장점을 더 보기 시작했다. 부족한 면이 많은 내 옆에 꿋꿋하게 있어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울컥하면서 고마워서 쓸데없는 안부인사를 보내기도 한다. 부모님한테도 사랑한다고 잘 안 하던 나는 사랑한다고, 감사한다고 더 표현하는 내가 되었다. 또 싫은 감정도 거절도 더 잘하게 되었다. 원래 화가 그렇게 많이 나는 편이 아니라 잘 싸우지 않는데 연애할 때는 이상하게 크게 몇 번 싸웠다. 그 사람한테 기대하는 게 나도 더 많아져서였나 보다. 서운하면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불편할 수도 있는 감정들을 말로 뱉어낸다.

 

나의 생각이 너무 많고, 자신감 없는 성격을 바꿔주려고 했었다. 나는 뭘 하려고 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제는 결말이 좋지 않을 뿐. 그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멈추는 법을 알려줬다. 내가 뭘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했을때 그 사람은 쉬는 법도 알아야 한다며 자기와 같이 놀 수 있는 것들을 제안했다. 게임도 같이 하고 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라고 계속 말해줬다. 내가 선택하는 길들을 이해는 못할 때가 있어도 존중해 줬다. 

 

점점 안좋아질때는 병원을 가보라고 먼저 말해줬다. 그때는 부모님에게도 말을 해도 그냥 넘길 때라 나에게 상담사는 이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도 바쁜데 나는 나의 아픈 감정들을 나눌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 아픈 걸 알지만 그때는 죽어도 정신과만큼은 가기 싫었다. 내가 낙인찍히는 것 같아서 이 길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왜 그걸 그렇게 생각해? 몸도 아프듯이 정신도 아플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이상한 거 아니고, 힘들면 정신이 아플 수도 있는 것도 정상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사람이 해준 말들이 가끔 생각난다. 나를 좋아해서 속삭여 줬던 말들, 나랑 성격이 정반대라 해줄 수 있었던 말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 내가 감정적일때 차분히 해줬던 말들. 헤어지고도 그 사람이 나를 바꿔줬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제는 어리숙했던 그때의 나를 만나주고, 함께 누군가와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던 추억을 남겨주고, 가장 힘든 시기에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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