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사/서양미술사

합스부르크 600주년 매혹의 걸작들; 막시밀리안 1세

by O_pal 2023. 3. 2.
728x90
반응형

막시밀리안 1세

붉은 배경과 함께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은 그의 압도되는 분위기가 나에게 까지 엄습해 온다. 특히 왕관을 쓰고, 갑옷까지 다 갖춰진 상태에서 자신의 최고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것 같다. 갑옷의 분위기도 배경의 붉은색 때문인지, 더 붉게 느껴진다. 분명히 상당히 화려한 망토와 왕관을 쓰고 있는데 그의 갑옷 때문인지 화려함을 누른다. 

 

그의 표정은 단호하다. 한치의 자비도 없어보인다. 정면이 아닌 측면을 바라봐 반쪽만 보이는 그의 얼굴은 더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이 측면을 선호하는 걸까 막시밀리안 1세가 선호한 걸까. 이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이 그린 다른 그림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와 측면의 모습으로 있다.

예전의 황실에서의 초상화는 당연히 인물의 생김새를 그리면서도, 그 사람만이 가진 개성과 성품까지 담을 수 있는 목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즉, 화가가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였다. 왕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 왕조를 대표하는 그림을 그리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왜 비슷한 옷과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막시밀리안 1세의 그림이 많은가? 궁금했는데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이 초상화를 여러 개를 복제해서 그려서 황제의 위엄을 알렸다고 한다. 

 

막시밀리안 1세

실제 막시밀리안 1세는 다른 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가 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을 표현해주길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두 그림은 황제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어깨와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면 지금 그의 모습은 황제 권력에 정점에 서 있어 여유롭고, 고고한 모습이다. 

초반 로마 황제가 되었을때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와 10년 동안 공동 정치를 했다. 그의 단독 통치가 시작하면서 그의 권력 강화가 시작된다. 

 

마리 드 브르고뉴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 전쟁과 각종 조약들로 유럽을 그의 손으로 잡기 시작했다. 부르고뉴 공국의 여공작 마리와 결혼하면서 네덜란드 벨기에 지방을 가지게 되고, 아들 펠리페를 결혼시켜 나중에 스페인 통치를 하게 될 씨앗을 뿌려놓았다. 나중에 손자인 카를 5세가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을 다스리게 되면서 막시밀리안의 짜놓은 판에 유럽은 놓이게 된다.

 

자신의 책략으로 비록 온 가족들을 전쟁과 결혼으로 보내게 되었지만 수많은 영토를 차지했다. 비록 가족이 수단으로 쓰였지만 자신의 책략이 들어맞을때마다 어떤 기분을 들었을까? 내가 죽기 전에 이 유럽의 땅을 다 차지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쏟아나지 않았을까? 그는 진정한 황제이면서 책략가라 나는 평가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